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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 10월의 읽을 만한 책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 승인 2012.10.17 14:20
  • 호수 875
  • 댓글 0

10월에 읽을 만한 책으로 5.16과 5.18의 역사적 사건을 형이상학적 깊이와 신학적 죄의식의 문제로 다룬 ‘지상의 노래’(이승우, 민음사), 바닷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동시집 ‘내 맘도 모르는 게’(유미희 글, 김중석 그림, 사계절),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 물리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낸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정갑수, 다른) 등을 선정됐다.

지상의 노래

이승우 / 민음사
2012. 8.24. / 365쪽 / 13000원
소설의 끝에서 시작하고 소설의 시작에서 끝을 맺는 독서를 해보자. 소설의 끝에서는 천산 수도원이라는 곳의 72개 지하방에서 성경을 옮겨 놓은 벽서(壁書)와 각각 1구씩의 유골들이 발견된 것에 대해 다음처럼 설명한다. “세상의 권력은 그들의 구별된 공간인 천산을 침범하고 파괴하여 카타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범하고 파괴하는 권력이 행사되는 이 세상이야말로 카타콤에 다름 아님을 그들의 구별된 삶과 특별한 죽음으로 증거 했다”

천산 수도원의 형제들은 군부 독재의 폭력으로 인한 희생양이 되어 몰살당했다.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그 카타콤을 죽은 자들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네크로폴리가 아니라 쉬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체메테리움으로 만든 것은 무덤 벽에 성경을 옮겨 적으면서 그 고난을 견딘 형제들의 믿음과 소망 때문이었다고 부연한다.

이때 세상의 권력이 난무하는 바로 이곳이 오히려 카타콤이기에 그런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이 성경의 진정한 의미가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런 역설이 소설의 시작에 이미 암시되어 있다. “천산 수도원의 벽서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다” 모든 인간은 욕망의 노예이기에 죄를 짓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근친상간의 욕망이나 권력욕에 대한 죄의식이나 속죄의식으로 천산 수도원의 형제들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제들은 세상에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넘어서고자 했으며 세상이 그들을 버리기 전에 그들이 먼저 세상을 버렸다. 이런 과정 속의 지난함과 간절함, 그럼에도 없어지지 않은 부끄러움과 더러움이 이 소설을 역사소설이나 종교소설이 아닌, 그냥 소설도 만든다. 이것이 바로 작가 이승우의 저력이다.
- 추천자 : 김미현(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오항년 / 너머북스
2012. 9. 8. / 371쪽 / 17,000원
후궁 소생이었지만 1608년 조선 제15대 왕으로 즉위한 광해군은 왕위계승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정비 소생의 배다른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고 영창대군의 어머니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가 폐위시켰다. 결국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폭군으로 낙인찍히면서 그는 왕의 묘호도 없이 또 다른 폭군 연산군처럼 그저 광해군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명(明)과 후금(後金) 사이에서 슬기롭게 중립외교를 펼친 점과 대동법의 시행과 창덕궁의 중건 등 나름대로 정치적 업적을 이룩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이 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광해군은 본보기가 될 거울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망칠 위험한 거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광해군 시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사료인 ‘광해군일기’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 점을 증명하고자 했다.

먼저 광해군의 업적으로 평가되는 대동법은 백성의 지지를 받았으나 왕실과 당시 집권 북인은 이권을 지키기 위한 본심을 서서히 드러냈고 대동법 추진자들은 하나둘 조정을 떠나든지 귀양을 갔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광해군시대의 실정이 나타났다. 대동법은 물 건너갔고 궁궐 짓는 망치소리만 들려왔다. 경연은 문 닫았고 영창대군과 인목대비를 폐위했다.

이제 불안한 정치현실에서 집권층의 분열과 공격, 죽임이 빈번하였고 관직도 상벌도 과거급제도 다 팔아먹는 참담한 현실이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광해군 15년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광해군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부정적 평가가 앞으로 역사논쟁에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자 한다.
- 추천자 : 김기덕(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가족, 철학으로 바라보다

권용혁 / 이학사
2012. 8. 10. / 359쪽 / 20,000원
가족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자 뿌리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회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해명이 필수적이다. 그런 한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은 철학, 특히 사회철학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그럼에도 국내의 경우, 현대에 들어와 가족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오히려 등한시된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 책은 가족이라는 개념을 광범위한 실증적 자료에 기초해 철학적으로 새로이 주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보다 큰 가치는 추상적인 가족 일반이 아닌 특수한 한국의 가족을 초점으로 삼고 있다는 데 있다. 여기서 저자의 일관된 입장은 서구적인 철학적 개념 틀로는 한국적인 문화적 특수성을 전제로 하는 한국의 가족을 이해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가족은 서구적인 자유주의-공동체주의, 사적 영역-공적영역, 개인-공동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혼성적이고 중첩적인’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한국적 맥락에 맞는 가족의 새로운 해석 틀로서 ‘복합 성찰성’,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혹은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 ‘공동체 중심 개인’ 등의 보다 유연한 개념이 등장한다. 나아가 저자는 한국의 가족이 강한 폐쇄성과 배타성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 가족 내적인 응집력과 연대성이 가족 외부로 확산될 경우, 오히려 열린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저자는 서구적인 잣대와 개념으로 한국적 현실을 해명할 것이 아니라 한국적 현실 자체에 뿌리를 두고 이 구체적 현실과 소통하면서 나름대로 보편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철학함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 작업을 ‘정상적인 철학함’ 내지 ‘정상적인 학문하기’라고 새롭게 규정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이러한 정상적인 철학함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한 사례로 간주하고 있다.
- 추천자 : 박인철(경희대 철학과 교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 조은평, 강지은 / 동녘
2012. 8. 14. / 399쪽 / 16,000원
액체근대로 알려진 사회학자 바우만이 점점 더 불확실해져 가는 현대세계의 불안한 삶을 조명하였다. 초기 근대가 고착, 안정, 단조로움, 규칙성, 반복성, 예측가능성을 가진 질서정연한 것이라면 액체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는 변화, 불안정, 복잡함, 비 규칙성과 무질서를 특징으로 한다.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의 자유는 불편하고 위험하여 “축복으로 위장한 저주”일 수 있다. 이것이 바우만이 본 유동하는 근대의 디스토피아적 모습이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레오 스트라우스의 “전대미분의 무능을 동반한 전대미문의 자유”와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은 바우만이 그의 유동하는 근대의 불안한 삶이라는 관점에서 세대차이, 온라인과 트위터, 프라이버시, 소비, 유행, 불평등, 교육, 공포, 종교, 운명과 성격 등의 일상의 주제를 읽기편한 문체로 쓴 44개의 편지이다.

몇 가지 흥미로운 편지를 보자. 액체근대의 세대 차이는 고체근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 세대의 지혜와 가치가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과정에서의 세대 차이가 아니라 정상상태에 대한 세대 간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공약 불가능하고 유전되지 않는다.

세대 차이를 성장과 성숙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로 간주한다. 온라인에서의 정체성은 가벼운 외투처럼 언제든 처분 가능한 것이 되었고 사회적 유대관계는 장기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접속을 유지하는 것이다.

빠르고 쉽고 문제없는 ‘만남’을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트위터로 인간관계의 친밀함과 심원함, 영속성이 상처를 입게 되었다. 열심히 구애할 필요도 없이 상대를 피자 주문하듯 하는 인스턴트 섹스 웹사이트도 생겨났다. 유행은 우리의 생활양식을 영구히 끝날 줄 모르는 혁명이라는 양식 안으로 내던져버리고 이것은 결국 인간 조건이 소비시장을 통해 식민화 되고 착취되는 과정이다.

유동하는 근대에서 인간은 고독할 수 있는 시간조차 빼앗겨 버렸다. 첫 편지에서 바우만은 고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할 수 있게 하는 숭고한 조건인데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고 쓰고 있다.

액체근대의 불안한 삶에 대한 흥미로운 진단에도 불구하고 바우만은 이불안을 해소할 구체적인 지혜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액체근대에서 비판이론의 새로운 임무가 사적영역에 의해 식민화된 공공영역을 해방시키고 수호하여 공적 공간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의미 있는 해법의 실마리이다. 그런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규범과 질서라면 도대체 끊임없이 변화하는 녹아내리는 액체근대에 어떻게 이 규범과 질서에 부여할 수 있을까?
- 추천자 : 마인섭(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함유근, 채승병 / 삼성경제연구소
2012. 8. 30. / 327쪽 / 15,000원
요즘 IT산업의 미래와 관련하여 빅데이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큰 자료’라는 뜻인데 정보화 시대에 정보가 흘러넘치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은 빅데이터가 기업의 경영을 바꾸고 있다며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선 빅데이터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빅데이터는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과 모바일 및 활자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데이터를 모두 포괄한다. 데이터가 들어오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는 점에서 종래의 데이터와 다르다. 따라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리와 분석이 어려우며 인력과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이 정도라면 일반 기업들은 구경만 해야 할 형편인데 기술 환경의 변화와 기업 경쟁 환경의 격화로 많은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기술발전으로 이를 활용하여 질병이나 사회현상의 변화에 관한 새로운 시각이나 법칙을 발견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기업 간 경쟁으로 애플의 아이폰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차별화되기 어려운 시점이 오고 그 때는 복제나 모방이 어려운 빅데이터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빅데이터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분야로는 실물 움직임을 추적하고 관리하는 영역과 더 나아가 가치사슬전체의 효율성 제고 영역을 들고 있다.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발견에 의한 문제해결, 의사결정, 새로운 가치창출 등 경영 혁신 단계별로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전히 빅데이터는 일반 기업들과는 소원해 보인다. 또 빅데이터가 ‘빅브라더’가 되어 우리를 지배할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우리나라는 데이터 생산대국인데도 활용을 못하고 소비만 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에도 소홀하다고 한다.
- 추천자 : 박원암(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정갑수 / 다른
2012. 8. 15. / 294쪽 / 13,000원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라는 책 제목과 저자의 약력만 보면 이 책은 과학책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계사 가로지르기 시리즈 중 여섯 번째 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니 과학책이야 역사책이야? 과학자의 시각으로 인류문명사를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느 과학서적과 다르고 여느 역사서적과 상이하다. 단순히 물리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중력에서부터 나노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보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사회질서와 경제 구조가 생겨났다. 이러한 사항은 역사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열역학법칙에 대한 이해로 열을 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인간이 터득하고 나서 증기기관이 생겨났음을 갈파한다.

이 책은 힘과 운동, 열과 복잡계, 빛과 파동, 원자와 소립자, 별과 은하는 물론 초전도, 플라즈마, 나노과학 등 최근 물리학의 화두가 되는 내용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새로운 주제를 설명할 때 영화 이야기로 서두를 풀어나가거나 키스할 때 사람들은 왜 눈을 감을까라는 질문으로 빛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는 등 책 읽는 재미를 끌어올린 저자의 내공이 엿보인다.

물리학 이론은 주식시장에서도 활용된다. 광전효과의 발견으로 태양전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물리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책 제목처럼 물리학 법칙이 세상을 움직였구나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추천자 : 김웅서(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원장)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

셔터시스터스 / 윤영삼, 김성순
2012. 7. 27. / 173쪽 / 20,000원
셔터 시스터스는 사진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사진가들의 모임으로 회원들이 찍어 올린 사진에 서로 의견을 나누고 감상을 적어주는 따스한 블로그가 인기를 끌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시스터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들 커뮤니티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언니들과 엄마들이 바라본 세상은 그리고 포착한 장면은 어떤 것들일까. 이들의 책에 실린 이미지는 한마디로 과하지 않다. 그렇다고 스타일 자체가 평범하다거나 사진술이 열등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과하지 않다는 것은 찍히는 대상을 정복하려 한다거나 혹은 사진가로서 자신을 내세우려는 야망 때문에 보는 이가 불편해지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 사진가들은 바깥 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갔고 주변에서 찾아낸 소소한 기쁨들을 두고두고 추억처럼 누리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은 내가 얼마나 사진을 잘 찍는지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원하는 마음을 네모난 이미지에 담았는지 경험을 털어놓은 책이다. 노출과 초점거리, 조리개 값 등 카메라 설정을 팁으로 담긴 했으나 그런 사진술은 기본으로 들어있을 뿐이다.

오히려 하나의 이미지가 어떤 상황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이미지의 탄생배경에 대해 수다를 떠느라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친한 친구의 앨범을 함께 보는 듯 푸근한 느낌마저 든다. 힐링 포토북이라고나 할까. 아마 이 지점이 바로 해외 독자들이 셔터 시스터스의 블로그에 열광한 이유였을 것이다.
- 추천자 : 이주은(성신여대 교육대학원 교수)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 인물과사상사
2012. 8. 16. / 535쪽 / 18,000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보이는 세계도 지배하게 된다.” 전성원의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의 문제의식이다.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자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운영자인 저자는 마르크스가 인간의 욕망을 과소평가했고 대중의 힘에 대해선 지나치게 낙관했다고 비판한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중의 의식은 이미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의해 장악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장은 이제 정치가 아니라 문화다. 관건은 그렇게 지배 이데올로기가 주입된 문화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문화망명’이다.

문화망명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직시를 통해서이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에서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까지 저자가 고른 인물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기업의 창업자이거나 운영자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월마트의 창업자가 샘 월튼, ‘메이드 인 저팬’의 신화를 만든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를 비롯해 호텔의 제왕 콘래드 힐튼, 플레이보이를 창간하면서 포르노제국을 건설한 휴 헤프너까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도 있고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의 창안자로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나 중남미 ‘바나나 공화국’을 농단했던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의 경영자 새뮤얼 제머리처럼 숨겨진 인물들도 있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우리의 일상을 바꾼 ‘혁명가’들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지배자’들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흥미로운 평전을 겸하면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우리가 누리는 일상에 대한 빼어난 성찰을 제공한다.
- 추천자 : 이현우(인터넷 서평꾼)


좋은 아버지 수업

임정묵 / 좋은날들
2012. 8. 17. / 287쪽 / 12,800원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려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정 모르는 아버지가 어설피 끼어드는 것은 자녀 좋은 대학 보내기 프로젝트에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는 소리다.

이런 점에서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무관심이 일정부분 정당화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경험상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무관심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알아서 잘 크고 공부도 잘아하는 '엄친딸' '엄친아'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사춘기를 통과하는 자녀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평소 자녀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아버지는 이 전쟁에서 뼈저린 무력감을 맛보게 된다.

후회 해봐야 이미 늦다. 잠시 한눈 판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커버린다. 뒤늦게 손을 내밀어봐야 아이들은 그 손을 절대 잡지 않는다. 왕따나 학교폭력으로 아이가 고통을 당할 때, 컴퓨터와 스마트폰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이런 저런 고민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할 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낄 때의 참담함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서울대 임정묵 교수의 좋은 아버지 수업은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로 사춘기 자녀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병법을 알려준다. 서점에 넘치는 일반적인 자녀교육 지침서와는 다르다. 자신의 경험 속에 건져 올린 실전 병법이다.

그는 아이의 변화를 이끌어 3가지 방법 가운데 첫 번째로 "마음속에서 아이를 아예 포기하라"를 제시한다. 물론 무관심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자녀에 대한 욕심과 선입견을 버리고 철저히 아이를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사춘기 아이와의 싸움 최전선에는 대개 엄마가 선다. 아버지의 역할은 후방 지원이다. 저자는 아버지가 엄마의 전투를 지원해야 하지만 때로는 '적'과의 내통을 통해 아이의 활로를 열어주라고 권한다. 거기에 부모와 아이가 모두 승리하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자녀 문제 밑바닥에는 아버지의 빈자리, 아버지의 무관심이 자리한다. 저자 말대로 바야흐로 아버지가 나서야 할 때다. 뒤늦게 후회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추천자 : 이계성(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내 맘도 모르는 게

유미희 글, 김중석 그림 / 사계절
2012. 8. 9. / 91쪽 / 8,000원
어린이는 나이에 따라 사고의 차이가 무척 크다. 고학년들은 깊은 사고가 가능한 반면 저학년일수록 집중 시간도 짧고 사고의 깊이도 얕다. 그래서 저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일수록 시적 완성도와 함께 읽는 재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쾌함을 주든지, 뜨거운 감동을 주든지, 운율에 의한 읽는 재미를 주든지…. 이 책에는 저학년이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이 모든 재미를 잘 살려 지은 시들이 많다.

그러면서 시적 완성도 또한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특히 갯마을을 소재로 한 현장감 있는 시들이 많아 다른 시집들과 차별성이 돋보였다. 시집 속의 시들은 갯마을의 거친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갯마을의 팍팍한 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주기도 한다.

화려한 도시 사람들은 이웃보다 더 많이 갖겠다고 눈에 핏발을 세우지만 작은 생명인 굴들은 갯바위에 다다다다닥 모여 살면서도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어우러져 산다. ‘굴 마을은 조용해!’ 이처럼 갯마을의 자연은 더 없이 평화롭지만 마을 주민의 삶은 팍팍하다.

학교와 생일이 같아도 학교는 딱 하루라도 쉬는데 엄마는 쉬지 못한다. 아이들 학용품 값이라도 벌기 위해 새벽밥 먹고 꽃게잡이 나가야 한다. 생일, 또 농사꾼 할머니는 밭을 망치는 잡초들을 뽑기 위해 여름내 허리 꺾이도록 쫓아다녀야 한다.

하지만 기어이 닭장 뒤꼍으로 생강밭 고랑으로 빠져나가는 풀들의 생명력 또한 놀랍다. ‘풀을 잡자’ 게랑 놀고 싶어서 ‘게, 섰거라!’ 외치며 쫓아가는 아이들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게, 살려요!’ 외치며 구멍 집으로 달아나는 게들이 사는 갯벌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면서 역지사지를 일깨워주는 배움터이기도 하다. ‘내 맘도 모르는 게’ 가끔은 정형화된 패턴과 식상한 표현의 시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신선하고 생명력이 충만한 시집이라고 하겠다.
- 추천자 : 오은영(동시 동화 작가), 이상희(시인, 그림책 작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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